조선시대 노비를 겁탈하면 벌어지는 일

조선시대 노비를 겁탈하면 벌어지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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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바람과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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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숙번은 당대 조선 최고의 권력자였습니다. 

 

태종 이방원의 오랜 심복으로

1차 왕자의난과 2차 왕자의난에 모두 참여했으며 

그 공적으로 정사공신, 좌명공신에 각각 봉해졌습니다.

 

태종의 심복인 동시에 왕좌에 올린 킹메이커로 

조사의의 난까지 진압하며 혁혁한 전공을 세웠기에 

조정에서 그의 권력과 위상이 매우 높았습니다. 

관직은 오늘날 대통령 비서실에 해당하는

왕의 최측근인 승정원 우부승지였죠 

 

당시 이숙번의 권력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려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한양도성의 기존 동-서 통행로를 바꾸는 과정에서 서문을 새로 만들게 되었는데, 새 문 후보지가 이숙번 집 앞 길을 지나가게 되자 이숙번이 압력을 행사하여 새 문의 위치를 상왕 정종의 궁궐인 인덕궁 앞으로 옮겨버렸다. 이 문은 서전문(西箭門)이라고 한다"

 

조선 조정은 한양 도성을 재정비하면서

서대문을 만들어 백성들의 통행을 보장하고자 합니다 

한양의 서대문 돈의문으로 당시에는 서전문이라 불렀습니다 

 

근데 하필 이 서대문이

조선의 최고의 권신 이숙번의 집 앞에 세워지네요? 

 

그러자 이숙번은 서대문을 자신의 집 앞이 아닌 

상왕 정종이 거주하는 인덕궁 앞으로 위치를 바꾸게 합니다 

자기 집 앞이 시끄러워진다는 이유 때문이죠 

 

조정은 감히 이 지시를 거역할 수 없었고 

서대문은 상왕 정종의 거처인 인덕궁 앞에 세워집니다 

 

아무리 권신이라고 하지만 상대방은 상왕입니다 

그럼에도 신하들은 정종의 눈치를 본 것이 아니라 

먼저 권신인 이숙번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근데?

 

그런 이숙번도 급사를 당할 뻔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노비에게 말입니다. 

 

이숙번은 노비에게 칼을 맞아 죽을 뻔하였지만 

강상죄를 매우 엄하게 처벌하는 조선에서 

칼로 찌른 이유가 정당 방위였음이 명백함으로

노비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조선은 유교 국가로 여인의 정절을 중시했기에 성범죄를 비교적 엄하게 처벌했습니다.

미수범은 장형, 강간범은 교수형에 처해질 정도의 중죄로 다루어졌습니다. 

 

이러한 규정은 원칙적으로 노비에게도 적용되었으나, 실제 판결과 집행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분, 그리고 주종 관계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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